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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하여

세기의 변화를 준 시멘트

by 삼동2 2019. 3. 26.


시멘트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결합재이며, 물과 반응하여 굳고 단단해지는 물질이자, 다른 재료들과 함께 굳힐 수 있습니다. 시멘트는 콘크리트를 닮은 벽돌공사를 묘사하기 위해 opus caementicium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로마인들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결합재로서 태운 석회와 조각난 암석으로 부터 만들어 졌습니다. 한국어로 양회는 시멘트를 가리키는 순화어 입니다. 수경성의 결합재를 얻기 위해 태운 석회에 부가되었던 화산재와 가루가 된 벽돌 첨가물들이 후에 cementum, cimentum, cament, cement로서 불렀습니다. 시멘트는 수경성 혹은 비수경성 으로 구분하며, 수경성 시멘트를 포틀랜드 시멘트, 혼합시멘트, 및 특수시멘트로 분류합니다. 시멘트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모르타르와 콘크리트를 만드는 것이며, 이들은 보통 주변 환경에 잘 버티는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한 골재들을 결합시키는 용도로 쓰입니다. 시멘트의 역사로 말하자면 시멘트의 어원은 라틴어 부순돌이라는 뜻인  caementum이 cement로 바뀌었으며, 넓은 의미의 시멘트란 물질과 물질을 접합시키는 성질을 가진 모든 재료를 말합니다. 시멘트질 결합재료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석고를 구워만든 소석고입니다. 소석고를 이용해 건설된 건축물로는 BC2500년 경에 건설된 이집트 피라미드가 있습니다. 피라미드에는 소석고와 모래를 섞은 모르타르를 사용하였으며, 석재의 줄눈에 사용되었습니다. 덧붙여 이때 사용된 소석고는 기경성 시멘트입니다. 석회석을 구워 만든 소석회가 시멘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시대부터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석회나 산토린 섬에서 나온 화샌재를 섞어 모르타르나 물잔 등을 만들었습니다. 로마에서는 나폴리 만 주위의 베수비우스 산 또는 포조리 마을 근처에서 발견 된 화산재를 포조라나 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18세기 말까지 소석고, 소석회ㅡ 화산재 등을 원료로 수경성 결합체를 만들어 구조물에 사용했습니다. 1796년 영국의 제임스 파커는 점토 불순물을 함유한 석회석 덩어리를 소성한 천연 수경성 시멘트 : 로만시멘트로 특허를 얻었으며, 1813년 프랑스인 비까는 석회석과 점토를 조합한 혼합물을 소성하여 인공적인 수경성 석회를 제조했고, 1816년 프랑스에서 로만 시멘트라는 것을 사용해서 콘크리트로 만든 대형 교량이 출현했고, 1822년 제임스 프로스트는 영국에서 비슷한 방법을 소개했고, 이후 1824년 영국인 조셉 애스프딘은 수경성 모르타르 원료인 결합재를 인공적으로 제작하는데 성공해서, 인조석 제조법의 개량으로 특허를 얻어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불렀습니다. 1845년 이삭 존슨은 포틀랜드 시멘트의 단점을 대치하여 소괴를 사용하고, 점토와 석회의 적당한 조합비를 결정하는 등 과학적인 근거에 입각한 시멘트계의 공로자입니다. 미국에서는 1818년 이미 천연시멘트가 생산되었는데. 1871년 데이비드 세일러는 포틀랜드 시멘트의 특허를 받았습니다. 캐나다에서는 1830년에 석회와 수경성 시멘트를 최초로 생산하였고, 1822년 독일에 슬래그 30% 혼합 고로 슬래그 시멘트가 개발 되었으며, 일본에서는 1890년경 시멘트 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의 시멘트 역사는 한반도의 첫 시멘트 공장은, 1919년 12월 일본 최대의 시멘트 회사였던 오노다 시멘트 회사에서 평안남도 동부군 승호리의 경의선 철로변에 세운 것으로 연간 6만 톤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공장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 일본이 만주 및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발판을 미리 마련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시멘트 공장은 1942년 삼척 공장으로 8만 톤 규모이며, 1945년 해방 당시 한국내 6개 공장의 생산 능력은 약 170만 톤 정도 였습니다. 구 후 1957년 문경에 대한양회 문경공장이 준공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시멘트 공업은 1962년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시멘트 산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적극 육성하게 되어, 1964년 쌍용, 한일, 현대 시멘트가 건설되었고, 1966년 아세아 시멘트, 1969년 성신양화가 건설되었습니다. 1971년에는 대한민국의 시멘트 생산능력이 700 만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토목사업 위주의 경제성장에 따라 시멘트의 수요는 날로 증가하여 1973년 고려시멘트, 1985년 한라시멘트가 건설되었습니다. 1997년에는 총 시멘트 생산량이 6천만톤으로 역사상 최대치를 보였습니다. 대한민국은 2009년 기준으로 세계 7대 시멘트 생산국이며, 세계 5대 시멘트 소비국 입니다 . 전형적인 포틀랜드 시멘트의 화학성분을 고려한 시멘트의 구성으로는 석화가 약 63% 실리카가 약 23% 알루미나가 약 6% 및 기타성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요 원료는 석회석과 점토 그리고 응결지연제인 석고나 경화촉진제인 염화칼슘등 기타 혼합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시멘트의 발전으로 경제성장을 따라 나라마저 성장했습니다. 건축은 정말 한 나라의 성장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역사를 그대로 담아낼수 있는 유일한 나라의 역사지표 입니다. 그중에 한옥과 더불어 시멘트라는 이 하나의 재료만으로도 그 결과를 잘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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